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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 인도적 지원사업 8년을 돌아보며...
 나눔  | 2004·09·08 12:09 | HIT : 11,666 | VOTE : 2,364 |
이윤상
굿네이버스(구, 한국이웃사랑회)
사업운영본부장

1995년 북한이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한 이후 많은 남한의 민간단체들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8년여의 세월이 지난 2003년 현재, 1995년에는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그 규모가 확대되고, 지원의 종류가 다양해졌고, 많은 민간단체들이 북한에서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6․15 정상회담 이후 남한 민간단체의 북한지원활동이 비교적 수월해지고 교류가 증대된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본인이 일하고 있는 굿네이버스(구, 한국이웃사랑회)에서는 1995년과 1996년 중국을 통하여 간접지원을 한 이후 1997년 5월 1일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면서 직접지원을 시작하였다. 본회는 UN 경제사회이사회(ECOSOC)로부터 포괄적 협의지위(General Consultative Status)를 갖고 있는 관계로 1997년 본회 대표가 뉴욕의 UN NGO 회의에 참석하던 중 북한 UN 대표부를 방문하여 북한에 대한 직접지원 의사를 전달하였다. 북한 UN대표부에서는 본회가 세계 10여 개국에서 일하고 있는 국제민간단체임을 인정하고, 직접 지원에 동의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1997년 1차 대표단을 평양에 파견할 수 있었다. 이 시기 북한에서 본회에 지정하여 준 북한창구는 "해외동포원호위원회(약자 ‘해동’)" 로서 1997년과 1998년 이 창구를 통하여 "큰물피해대책위원회"에 구호물자를 탁송하였다. 본회에서는 2000년까지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창구를 통하여 북한에 물자를 지원하였으며, 2001년 그 창구를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민족화해협의회" 로 변경한 이후에도 굿네이버스 미국 (Good Neighbors U.S.A.)은 계속하여 "해외동포원호위원회"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해외동포원호위원회"와 일하던 당시 본회에서는 긴급구호사업 외에 젖소 지원을 통한 어린이 우유급식사업을 시작하였으며, 그 때 지원하기 시작한 북한의 3개 젖소목장과 1개 협동농장을 지금도 계속 연계하여 지원하고 있다. 단지 그 시기에는 "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서 남한 국민을 초청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본회 대표 등 다른 나라 영주권이 있는 직원이나 후원자들만이 방북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서는 다른 해외동포들과 같은 조건에서 일하고 방문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으니 돌아보면 남한의 다른 단체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다 할 수 있겠다.  본회 대표들은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로 나와 귀국하기도 하고... 해외동포 입장에서 북한 주민들과 접촉하기도 하고... 남한 대표단들이 잘 투숙하지 않은 해방산 호텔이나 평양호텔, 대동강호텔 등에 투숙하기도 하고... 여하튼 민족화해의 싹을 틔우며, 초창기 접촉하여 사업을 수행하기에는 좋은 입장에서의 사업 수행시기였다.

2000년 말 북한의 창구를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민족화해협의회"로 변경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명에 이르는 후원자들이 49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고, 이는 북한 지원사업을 더욱 활성화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사업을 후원하는 많은 후원자들이 직접 북한을 방문하여 지원한 물자를 확인하고, 모니터링 하는 것은 북한지원사업을 전개하는 민간단체와 북한에 대한 신뢰를 쌓는 바탕이 되고 있다.

본인이 북한을 방문한 것만도 20여 차례가 넘으며, 중국과 같은 제 3국이나 남한에서 북한의 사업 책임자들과 협의한 접촉까지 합하면, 30여 차례이상의 만남이 있었다. 그동안 북한을 방문할 때면, 여느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ꡒ민족화해협의회ꡓ담당자들이 본회 대표단을 안내하고, "민족화해협의회"나 "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책임자들과 사업협의를 한다. 그리고 대표단의 사업성격에 따라 농업관련 사업은 농업성의 축산관리국, 목장관리국, 가금총국 대표들과, 보건사업은 보건성이나 조선의학협의 대표들과, 그리고 교육사업은 교육성 대표들과 사업협의를 하곤 하였다. 그러나 사실 가장 반갑고 오래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은 사업장(젖소목장, 협동농장, 닭공장, 육아원, 학교, 병원, 제약공장...)에 있는 책임자들이나 주민들이다. 그들은 언제 만나도 반가운 우리의 이웃들인 것이다. 그 외에 접촉하게 되는 사람들은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투숙하는 호텔(고려호텔, 양각도호텔 또는 보통강호텔 등에 투숙함)이나 호텔 밖에 있는 많은 식당의 종업원들, 참관하는 곳의 안내강사들이다.

먼저 축산사업장을 돌아보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98년 이후 시행하고 있는 젖소 지원사업을 위한 젖소목장이 3곳, 협동농장이 1곳 있다. 1998년 젖소 200마리 지원 후 남한의 구제역 발생으로 추가지원을 못하다가 2002년 100마리, 2003년 상반기에 30마리를 추가 지원하였다. 우리 대표단이 방문하였을 때 가장 반가운 인사(?)는 사실 젖소들이다. 물론 남한에서 보낼 때에 비하면 마르고 젖 생산량이 높지 못하지만, 민족화해의 표징으로 북한에서 사육되며, 젖을 생산하고 그것이 북한어린이들에게 공급되고 있으니, 볼 때마다 반갑고 대견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남한에서는 젖소가 젖을 짜기 시작하면 최대한 많은 양의 젖을 짜도록 하고, 3년 이후에는 수명을 다한다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사료가 부족하고, 자연적인 상태에서 젖을 생산하므로 5년이나 지난 지금도 적게나마 젖을 생산하며 새끼(손자, 손녀, 증손자, 증손녀 등)를 낳고 있다. 목장에서 젖소를 보고 가족처럼 반가워하는 모습을 북한 안내원들은 무척 재미있어 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낸 젖소들의 의미가 특별하거늘...

초창기 젖소의 상태나 사료에 대한 오해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본회가 초기에 보낸 임신한 젖소들이 일부 폐사하자 남한 당국의 조작이라고 오해하기도 하고, 배합사료에 이물질이 들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물론 수년이 지나고 신뢰가 쌓인 현재는 그러한 일들로 서로 오해하지 않는다. 그 이후에 사료뿐만이 아니라 우유 멸균시설, 착유시설, 가공시설, 유산균 생산시설, 십 만개 이상의 우유병, 우유 운반통, 운반차량 등이 지원되었고 그 과정에서 쌓인 신뢰는 그 이후 발생되는 어떤 오해도 서로 풀어 갈 수 있었다. 오히려 남한에서 방문한 후원자 중 일부는 50년의 불신이 그대로 남아 있어, 너무나 깨끗이 관리하며 사용하고 있는 시설들을 보고, 사용하지 않는 전시용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정성껏 관리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남한 젖 생산량에는 많이 못 미치고 있고 젖소 상태도 목장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고 있어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지만 그동안 쌓은 신뢰는 이를 해결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목장이나 농장을 방문할 때면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현지 주민들에게서 느껴지는 정이 남다르다. 무엇이든 그곳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들을 하나라도 더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 시골인심이거늘 어찌 북한이라고 다를까. 농약 걱정없이 먹을 수 있는 산에서 들에서 나는 머루, 다래, 옥수수, 고구마, 감자, 젖소에서 짠 우유를 쟁반가득 내어 준다. 여름이면 개장국과 좁쌀 밥을 지어 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정성은 못 먹던 개장국도 한 그릇 다 먹게 만든다. 우리가 맛있게 먹고 목장을 떠날 때 남은 음식을 싸달라고 하면 모두들 얼마나 좋아하는지...

목장에 지원한 시설들을 설치하기 위해 기술자들이 목장에서 숙식을 하며, 작업할 때는 키우는 염소를 잡아 대접하기도 한다. 잠자리가 불편할까봐 농장 지배인과 일꾼들이 신경쓰는 모습은 몸둘 바를 모르게 하고, 남한의 많은 국민들이 우리가 여기 와서 이렇게 일하는 것을 함께 경험할 수 있으면 통일이 하루라도 더 앞당겨질텐데.. 하는 상념에 빠지게 한다.

보건사업도 마찬가지다. 지원기간이 3년을 넘고 있는 평양 제2인민병원의 원장님과 소아과 과장, 직원들은 언제 만나도 반가운 동업자들이다. 2001년부터 북한 전역에 있는 육아원(0세-4세 고아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을 지원하고 있다. 이 육아원들에서 만나는 원장님들 교사들, 의사들(북한에는 육아원에 의사가 반드시 파견되어 있다.)도 역시 우리의 동업자들이다. 어린이들의 영양식 지원과 함께 남포시에 있는 육아원을 작년에 부수고 현재까지 신축하고 있다. 원래 탁아소였던 가건물을 육아원으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비좁고 양육환경이 너무 안 좋아서 신축하기로 결정하였다. 작은 육아원이지만 이를 신축하기 위한 자재와 설비는 수백개가 넘는다. 남한에서 각 부분들을 제작하여 탁송한 물품들로 아담한 건물이 준공될 날이 멀지 않았다. 올해는 평양육아원 개축사업도 시작하였고, 전문놀이시설(짐보리) 설치작업도 하고 있는데, 두 육아원 원장님들이 모두 여성들이다. 수십 년 동안 아이들 키우는 일만 전문으로 한 분들이 건축을 하고 있으니,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그 정성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준공을 기다리고 있다.

국제라이온스 협회의 전액 후원으로 지난해부터 평양 대동강변에 안과병원을 건축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공식을 할 때까지 상호 준비기간이 1년 넘게 걸렸다. 그래도 결정된 부지가 3번이나 변경되었다. 그동안 서로를 오해할 수 있는 변경사항들이 생기기도 하였지만 오랜 지원 경험과 신뢰는 내년에 안과 병원을 준공시키기 위해 서로 최선을 다하도록 하며, 남과 북을 하나로 만들고 있다.

그 외에도 작년 말부터 시작한 정성제약의 주사제 공장 설치 사업, 양계(닭공장, 닭목장이라 칭함)사업 등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분야에서 더 많은 전문가들이나 후원자들이 북한 지원에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대북사업을 수행하는 민간단체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여러 전문가 그룹들이 자신의 전문분야를 활용하여 북한의 어린이들이나 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더 많은 후원자들이 북한을 직접 방문하여 우리들의 사업을 확인하고, 북한의 모습을 그대로 느끼며, 민족의 화해를 만들어 낼 수 있길 바란다.

우리에게 지난 50년의 아픔과 벽이 있다. 대북지원사업을 하면서 때로 본인 자신도 그리고 이 일을 후원하는 후원자들도 그 아픔이 우리에게만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리는 남과 북이 서로 그 아픔을 모두 갖고 있음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하여 우리의 마음 저변에는 그들에 대한 우월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다. 그런 착각과 우월감은 남북화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50년의 아픔과 벽은 사랑을 전하는 일도 힘들게 하지만 결국 사랑과 신뢰만이 아픔도 상처도 치료하고, 벽을 허물어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약일 것이다. 더 많은 북한 사람들과 신뢰가 쌓이고, 그들에게 사랑이 전달된다면, 그것이 곧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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