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인터내셔날


분류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VIEW ARTICLE
[조선일보] '북한 주민'을 돕는 사람들
 나눔  | 2004·08·11 17:15 | HIT : 12,964 | VOTE : 2,104 |
'북한 주민'을 돕는 사람들(4·끝) 북한지원 NGO 활동가 5명의 솔직한 대화 “대북지원 어려움 많지만 한핏줄 굶길 수야 있나요”

발행일 : 2002-05-21 [특집] 기자/기고자 : 최보식;김미영;안용균

북한 주민을 돕는 민간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만났다. 소속 단체는 달라도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다. 다섯 명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생각밖에 힘들었다. 다들 바빴다. 참석자 중 두 명은 바로 다음날 중국 북경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갔다. 이들 중 한명이 “도와주는 입장도 그리 편하지는 않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북한 사람들은 ‘집안에서 잘 사는 형제가 나머지 어려운 형제를 돕는데 그걸 뭐 생색을 내느냐’는 겁니다. 초반에는 별일도 아닌 일로 다투고, 완전히 눈싸움·기싸움이 벌어집니다. 서로 같은 말을 사용해도 사안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요. ”

그때 다른 참석자가 “그 정도는 양호하고…. 극단적으로 대놓고 ‘당신들은 우리 때문에 지원 받는 거 아니냐, 우리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후원금을 받고 그 걸로 월급 받고 사는 것 아니냐’는 식이지요”라고 맞받았다.

이때부터 서로 주고받는 본격적인 난상 대화가 진행됐다.

〓처음에는 ‘정치적 대가를 바라느냐 아니면 종교적인 대가를 바라느냐. 당신들이 여기 밀가루 100t을 가지고 온 것은 고맙지만 당신들도 사진 찍어 가서 원하는 것을 얻지 않느냐’며 철저히 따져요. 우리가 활동하는 것을 몇 년간 지켜보면서 좀 변하기는 했어요.

〓사실 받는 입장도 있거든요. 우리가 주더라도 가진 자의 교만(驕慢)을 보여서는 안 되지요. 체면과 자존심으로 먹고 살아온 민족인데…, 기본적인 자존심마저 무너뜨리며 도움을 주는 것은 하나도 반갑지 않다는 겁니다.

〓이들과 협의할 때는 논리가 중요합니다. 북한 사람들이 ‘선생, 논리가 섭니다’라고 말하면, 이는 우리 의견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입니다. 물론 논쟁에 이겨서 이런 말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일단 논쟁이 붙으면 절대로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몇 번 겪어본 뒤 우리는 논쟁을 피합니다. 대신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주면, 자기들끼리 그것을 가지고 최대한 토의를 한 뒤 답을 줍니다.

〓현장 접근의 문제로 가장 많이 싸우게 되죠. 우리로서는 북한 주민들이 처해있는 생생한 현장을 직접 보기를 원하지만 그 쪽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정이 있으니, 간혹 심하면 충돌이 생기곤 합니다.

〓북한측 인사가 ‘이웃집에 쌀이 떨어져 쌀을 빌려 줬으면 됐지, 그 쌀로 떡을 해먹든 죽을 쑤든 시시콜콜 묻는 것은 좀 그렇지 않으냐’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동포애로 도와준 것은 우리도 고마운 줄 안다. 하지만 지급된 물자들이 어디로 들어가는 것까지 왜 꼭 봐야 하느냐’며 따지죠. 자기들이 주민들의 먹을거리까지 가로채는 그런 사람들은 아니라는 거죠. 그렇지만 우리로서는 분배의 투명성 문제만큼은 양보할 수 없잖아요.

이 대목에서 대화는 ‘퍼주기식’ 대북 지원으로 옮겨갔다. 한 참석자가 “글쎄요…”라고 뜸을 들인 뒤 “민간단체는 퍼준 적도 없고 퍼줄 만한 여력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정부에서 먼저 비판의 여지를 제공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다른 참석자가 “정부의 금강산 사업에 들어간 달러가 어디에 쓰이는지는 모르나, 우리가 도와준 물자에 대해서는 90%쯤 모니터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러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북한은 216개 군(郡)중 130여개 군을 개방했습니다. 가령 빵 공장에 밀가루 20t을 지원하면 한 달 후 빵 공장의 생산량을 확인하고 그 빵이 배급된 탁아소에 가서도 확인할 수 있지요. 한 달에 두 번씩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

또 다른 참석자는 “북한에 지원되는 물자가 군사용(軍事用)으로 전용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안다”고 말을 받았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원하는 몇백억원이 과연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대북 지원에 드는 비용으로 남북한 간에 50년 묵은 악감정을 완화하는 효과를 볼 것”이라고 했다. 대화는 다시 물 흐르듯 연결됐다.

〓우리 후원자 중에도 북한을 도와 주지 말아야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고 그래야 통일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합니다. 그럴까요? 오히려 상대방의 반감만 커지게 할 뿐이죠. 특정 정권이 무너지고 안 무너지는 것은 사실 통일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공황(恐慌) 상태로 가는 것은 더 위험합니다. 그런 사태가 오면 우리로서는 감당할 능력이 없어요. 만약 북한이 붕괴될 경우 지금보다 더한 강성(强性) 정권이 나타나거나 엄청난 난민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 체제를 유지시켜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역사적으로 배가 고파서 붕괴되는 정권은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사회 현상을 만날 때 폐쇄된 체제에서 변화가 생깁니다. 중국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현재 북한 정권의 유지를 바라느냐 붕괴를 바라느냐는 것은 나중의 문제입니다. 남북간의 진정한 통합을 위해서도 북한의 경제체제가 일정 수준에 올라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 체제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돕지요. 의료분야 지원을 할 경우 부족한 의료기구를 제공하고 의학적 지식에 대한 조언은 하지만, 의료 행위 자체를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지원만으로 북한이 유지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작년에 우리의 지원 액수는 약 1500억원입니다. 이는 북한의 2300만 명이 살기 위해 필요한 돈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황해도의 곡창 지대에서 나온 식량은 군대·당간부 등에게 먼저 지급됩니다. 쌀 150만t이 부족하니, 나머지 주민들을 돌볼 여력이 없습니다. 국제사회나 우리가 돕지 않는다면 기댈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원한 식량은 북한 내 배급 체계에서 소외된 노인·어린이·병약자 들에게 돌아갑니다.

〓언젠가 북한 농업과학원의 한 국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당간부인데 얼굴이 훌쭉했습니다. 왜 그러냐 물으니, “인민이 굶는데 우리가 어떻게 잘 먹고 잘 수 있습니까”라고 해요.

여기서 진행자가 끼어들어 “혹 북한의 눈치를 보면서 지금 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한 참석자는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솔직하게 말하는 중”이라고 답변했다. 다른 참석자는 “북한을 자주 왔다 갔다 하니까 북한에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된 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라고 한 뒤 “설령 그렇더라도 정치적 이념까지 그 쪽으로 기울어지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오히려 시장경제가 더 우수하다는 저의 신념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전 분명히 한국사회의 중산층입니다. 정말 비참할 정도로 어려운 모습을 보고 도와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지요.

〓지난 1년간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액수는 한국의 두 배가 됩니다. 또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 발언을 해 미국이 북에 한푼도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 한국보다 더 많이 지원했습니다. 과거 서독이 동독에 지원한 액수는 우리가 북에 지원한 것의 20배가 넘습니다. 형제 중 하나는 못살고 하나는 먹고 살만합니다. 먹고 살만한 쪽이 먼저 도와주고 ‘잘 지내자 어쩌자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매년 북한 주민을 돕는 후원자는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창기에 비해 열기나 관심은 떨어졌어요. 특히 대북 지원이 정치적 논란을 빚을 때마다 우리는 엄청난 타격을 받습니다.

〓사실 북한에 수세적 입장으로 끌려가는 것은 정부죠. 정부는 대북 성과를 보여줘야 하니까요. 하지만 우린 성과를 보여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굶고 병든 북한 주민을 먹이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북한 정부에 꿀릴 이유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정부의 대북 지원액 중 20~30%는 민간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해왔지요.

〓정부의 대북 지원은 숫자 놀음일 때가 많습니다. 가령 비료를 보낼 때도 현장에서 보면 옥수수밭에 필요한 비료와 감자밭에 필요한 비료가 다릅니다. 그 쪽의 경지 면적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면 훨씬 더 효과적인 지원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비료는 몇 t’이라는 식이니 낭비가 많죠.

〓북한에 지원 물자를 보내는 것도 어려워요. 인천에서 남포로 물자를 실어나르는 용선(傭船) 문제입니다. 북한에서는 한국의 한 선박회사에 독점권을 주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식량이나 퇴비를 보낼 때도 벌크(bulk)를 쓸 수 없어요. 비싼 컨테이너로 실어 보내야 합니다. 지난번 젖소를 보낼 때는 젖소용 컨테이너가 없다는 이유로 선적을 거부하는 바람에 우리가 젖소 운반용 컨테이너까지 제작해야 했죠. 또 북한당국과 선박회사 간에 문제가 생길 경우, 항구에 대지 못한 채 바다에 한 달간이나 떠 있기도 합니다.

이날 서로 체험담을 주고받는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랐던지,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진행=최보식·김미영·안용균기자

congchi@chosun.com

/사진=이기룡기자 krlee@chosn.com

◈참가자들

▲김형석(金亨錫·47): 한민족복지재단의 사무총장. ROTC출신으로 총신대에서 역사학을 강의한 적 있다. 북한을 30여회 이상 방문했다.

▲이윤상(李侖相·39): 한국이웃사랑회의 기획실장. 대북지원사업을 전담하면서 남포시에 있는 젖소목장 등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조일(趙一·40): 유진벨재단의 사무국장. 북한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주로 미국에서 머물고 있는 스티븐 린튼 회장을 대신해 한국측 사무를 총괄하고 있다.

▲박창빈(朴昌彬·59): 월드비전의 사업본부장. 독일이 통일되던 시기에 독일에서 선교활동을 한 적 있고 현재는 대북지원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북한을 8차례 방문했다.

▲임원택(林元澤·50): 국제옥수수재단의 사무처장. 22년간 신문사 업무직에 근무하다 98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북한을 5차례 방문했다.
     
NO       SUBJECT NAME DATE HIT
  [기고] 북한에서 만나는 사람들 [2002-05-23]  나눔 04·08·15 11782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GGAMBO